• 사랑하는 어머니께

      날짜: 2010. 07. 14  글쓴이 : 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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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엄마께




        한명숙 자매




        찌는 듯한 더위로 덥다덥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날씨에 자식들 힘들까봐 그렇게 빨리 하늘나라로 먼 여행을 떠나셨어요.




        사랑하는 엄마!


        아주 오래전 제가 6살 때였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배가 아프시다 하시더니 (저녁을 드신후에) 손을 쓸 새도 없이 그날 밤 엄마는 저희 어린 삼남매를 낳아 두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서울 한 복판에 살았지만 거의 단층집들 뿐이었고 병원도 별로없던 시절입니다. 남동생이 3살, 제가 6살, 언니가 7살일때 지금 엄마께서 우리집에 오셨습니다. 그때부터 엄마는 조건없는 사랑으로 저희들을 키워주셨고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온갖 고생을 다 짊어지신 힘들고 어려운 삶이었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늘 기도와 찬양으로의 삶을 사셨습니다. 새벽에 잠시 깨시면 어린 동생을 포대기에 꼭 싸서 업으시고 저를 데리고 새벽기도를 다니신 것을 기억합니다.  힘든줄도 모르고 종종걸음으로 엄마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이웃을 너무나 사랑하셨지요.




        긴긴 여름날  저희들만 점심을 주시고 엄마는 왜 안먹느냐고 물으면 난 먼저 먹었다 하셨지요. 그래도 이웃에 어려운 가정이 있으면 쌀을 덜어서 그 댁 부엌에 조용히 놓고 오신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어려움이 있으면 함께 감당하시며 밤낮으로 기도하셨지요. 교회 젊은 목사님 사모님이 많이 아프셔서 그때 10살 밖에 안되는 어린 언니가 방학 동안에 사모님댁에 가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사모님 병간호를 한 것도 생각나요.


        엄마와 나는 어린 언니를 방학 동안에 사모님 댁에 데려다 주고 오면서 난 언니가 가엾어서 많이 울었답니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몇 달 전부터 엄마의 뜨개질은 시작이 됩니다. 교회 어르신들은 엄마께서 손수 뜨신 목도리를 하시고 따듯한 겨울은 지내시곤 하셨지요.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어려운 가정을 돌아보며 달려가셨던 모습들.. 돈과 명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던 우리 엄마!




        넉넉지 못한 생활속에서도 가계부를 늘 적으시며 쪼개고 쪼개서 음식을 준비하십니다. 화려하지 않은 밥상이지만 엄마께서 해주신 반찬은 늘 너무나 맛있었습니다. 김치찌개, 미역국, 된장찌개, 콩나물 무침... 아무리 먹어도 너무 맛있는 엄마만의 손맛은 일품이었습니다. 특히 저희 엄마의 콩나물 무침. 고춧가루 쓰지 않고 기름에 살짝 데쳐서 마늘, 깨소금만 넣었는데 정말 환상이예요. 아무리 따리해도 아무도 그 맛을 못냅니다. 저희 남편은 늘 장모님 콩나물 무침을 자랑하고 음식 솜씨가 대단하신 시어머님 앞에서도 자랑을 늘어놓곤 했지요.




         지난 일요일. 장이 꼬여서 식사를 제대로 못하신다고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듣고 남동생과 현주(며느리)와 제가 엄마를 뵈러 갔었습니다. 병실에 들어가니 밝은 모습으로 누워 계셨습니다. 치매로 몇 해 고생하셔서 처음엔 알아뵙지 못했지만 엄마 딸이라고 하니까 그때부터 또박또박 저희 삼남매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노래도 하고 얘기도 나누며 몇 시간을 보내다가 엄마의 평온한 모습을 보고 엄마 다시올게 하고 병실을 나왔는데 밤새도록 엄마와 찬양도 실컷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해 드렸을 것을.....




        저는 엄마한테 갚을 수 없는 빚을 많이 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늘 찬양을 즐겨 부르시던 엄마!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주께 맡기세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벋고 보니 슬픔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엄마의 찬양은 영원히 내 가슴에 살아있을 겁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믿고 천국 소망이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죽음에 대한 자유함이 아닐까요?




        때로는 엄하셨지만 늘 적극적이고 활동적이고 정의로우셨습니다. 하루는 착한 동생이 친구들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선생님께 많이 맞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화가 단단히 나셔서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가서 조목조목 따져서 선생님께로부터 제대로 사과를 받고 친구들 앞에 오해를 다 풀어주고 집에 돌아오셨습니다. 엄마는 늘 든든한 울타리셨고 버팀목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렇게 끊임없는 헌신과 기도와 사랑으로 저희 삼남매는 늘 우등생이었고 언니는 늘 수석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고등학교 졸업때는 교육감 상을 타서 엄마를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도 감동하셔서 훌륭한 며느리를 보내 주셨습니다. 늘 한결같이 부모님을 챙겨드렸던 우리 올캐에게 정말로 감사합니다.




        2010년 6월 17일.


        엄마는 온갖 고생과 수고의 삶을 마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인생의 모든 짐 내려놓고 주님 계신 그 좋은 천국에서 영원히 평안 하세요.


        자랑스런 우리 엄마!


        훌륭하신 우리 엄마!


        하늘에서 하나님께 큰 상 받으실 우리 엄마!


        다시 부르고 싶은 우리 엄마!




        엄마- 엄마- 사랑해요. 평안하세요.




        2010년 6월 19일 둘째딸 명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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