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을 불로 비유한다면 제자반은 따뜻한 벽난로와 같아

      날짜: 2014. 01. 01  글쓴이 : 이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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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써 권기창 목사님이 이끄시는 제자반이 끝난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또 21기를 마지막으로 가르치신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들어온 제 자신이 대견(?)스럽게까지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지어졌는데 목사님은 누가 보더라도 가르침의 은사와 소명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시작 제자 vs 무리 아직도 첫날을 잊을 수 없는 것은 목요일이 특별히 바쁜 하루라서 무거운 마음으로 참가하였을 때 군중과 제자의 차이에 대해서 배운게 생각되어 집니다. 그 설명을 들었을 때 제자반의 악명 높은 스케줄에 이미 겁을 먹고 있었던 저를 포함한 모든 분들의 부담이 눈 녹듯이 없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자 만이 제자가 될 수 있는데 이깟 하루 정도를 가지고 우는 소리를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최고는 이것! 개인적으로 권목사님의 가르침 중에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하나의 테마를 정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성경을 통독한다는 전제로 말씀을 가르치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통전적인 관점에서의 가르침은 성경을 처음 배우는 성도이건 여러 번 공부를 한 자이건 풍요롭게 누릴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 되어 집니다.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를 볼 때 하나님께서는 우선 자신이 저희들의 왕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시고 또 신약에서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또 요한일서에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제자반 에서도 이런 요점을 알기 쉽게 sonship이나 kingship(이것은 하나님의 자녀 한명 한명이 곧 왕이라는 관점이지만)의 관점에서도 다루어졌습니다. 여하튼 이런 통전적인 제자훈련 또는 성경통독은 성도로서 인생 마지막까지 가져가야될 모습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해준 시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목사님은 쪽집게 스타학원 강사? 서두에도 언급되었듯이 목사님의 가르침의 은사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평소에 성경이 생소한 책이라고 여겨졌던 분들이 변화되는 모습이나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고 기뻐하는 성도를 볼 때 아마 목사님은 앞으로 천국에서의 소명 중에 하나가 쪽집게 학원 강사로 활동하시지 않을까 우스겟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나의 반항을 제어해 준 벽난로 제자반에 대한 또 하나의 소감은 마치 말씀을 불이라고 비유한다면 제자반은 따뜻한 벽난로와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늑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저희를 살릴 수도 잘못 이해해 다치게도 할 수 있는 말씀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제가 헛소리를 남발해도 웃으면서 들어주시고 또 그렇다고 해서 아닐 때는 아니라고 확실히 말씀해주시는 목사님을 볼 때 수 십년 간의 목회 경험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항상 목사님의 말씀과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일예로 들어서 볼일 보면서 말씀을 읽는 것에 대해서 의구심을 표현하셨을 때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차이라고 생각되지만)저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영적인 것은 좋은 것 또 육체와 관련된 것은 나쁜 것 이라고 단정짓는 그리스 사상 또는 한국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으신게 아닌가 하며 대든 때도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웃으시면서 그 점에 대해서 형제가 다시 기도해 보세요라고 말씀 하셨지만 저는 다시 한번 마음 속으로나마 상소를 올려습니다. 문화적인 차이일수도 있는데 저는 왜 한국 목사님들은 기도나 축도를 하실 때 마치 조선시대에 신하들이 왕에게하듯이 무겁게 하시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의 일화로 어느 목사님이음식이 식을까봐 식기도를 간단하게 하셔서 긴 기도가 될 줄 알았던 아이들은 좋아하고 목사님을 초대한 부모님은 “ungodly”한 목사님에게 놀라고 실망하셨다고 합니다. 저는반대로이 분이야말로 형식과 본질의 차이를 꿰뚫은 분이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그분의 인생과 철학이 뒷받침해 주기 때문에) 물론 생각해보면 충분히 찬반론이 오고 갈 수 있겠습니다. 반대하는 분들은 신명기 23장을 찬성하는 쪽은 로마서14장과 마태복음15장을 들겠지요. 사실이런 중요하지 않은 일로 논쟁을 벌이는 것은 복음의 본질에 눈이 머는 어리석은 일이지만다시 벽난로의 비유로 돌아가서 저에게 있어서 반항을 하던 폭주를 하던 무엇이든 안전하게할수 있었던 그런 실험적인 장소 였던 것 같습니다.
        -항상 고민하시는 목사님 사실 한국 교회에 대에서 heart를 가진 목사님의 여러 통찰과 고민 또 자기 성찰 속에서 느낀 점은 수업을 듣기 전에는 한국교회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가득찼다면 수업을 듣고 난 후에는 이것이 바로 제 자신의 죄의 문제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나 다니엘의 기도가 괜히 나오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응용 11과 제자도 통합의 길에서 달라스 윌라드가 인간은 누구나 예외없이 ‘나라’를 갖고있으며 모든사건에 대해 자신의 선택으로 좌우되는 자신 만의 독특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부분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학생시절 맨하탄 120가를 거닐면서 비슷한 묵상을 한 것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프랭크 로바크의 실험에서 나오듯이 매분 몇초마다 자신의마음을그리스도께 향한다는 그런 구체적인 생각— 하나님과 끊임없는 의식적 교제의 실행으로—까지는 발전시킨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왕국의 도래를 항상 기도하면서도 진정으로제 자신이 하나님 나라와 통합 되겠다는 구체적이고 완전한 노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자신을 실험한 결과 직장에서는 보다 손쉽게 실천 할 수 있으나 긴장이 풀리고 저녁이 되어 ‘옥상을 산책 할 때’나 가족과 있을 때 상당한 애로사항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은혜는 하나님께로서 오고 주시는 이도 유지하시는 분도 주님이시지만 자신의 구체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로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은혜를 받는자 제가 또한 수업을 받으면서 은혜를 받았던 부분은 특정한 말씀으로부터 예상치 못하게 받는 뜨거움이었습니다. 또 동시에 제 주위에 특히 믿은지 얼마되지 않는 동기가 말씀의 배움으로 은혜를 받을 때 그 모습을 보고 저 또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로부터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받고 싶어하는 자 중에한 명으로서 성경의 어렵고 심오한 부분은 하나님의 무궁한자비/은혜와 또 악인을 심판하셔야 되는 의로움 사이에서 발생하는 역설적인 tension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면서 논리를 추월하는 이 진실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은혜를 받는 제 자신이있습니다. 보통이 tension까지 도달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는데 아마도 목사님의 성경금맥강의를 통해서 성경의 말씀이 그 특정한 사람의 마음에 관통되지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목사님의 secret 트리비아 팬(trivia fan) 하루의 피곤을 업고 눈도 뜨지 못할 정도의 상태에서 제가 위로를 받았던 것 중에 하나는 목사님의 트리비아였습니다. 미쳐 마음에 새기지 못했던 시편에서의 구절 구절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세 새대가 같은 장막에서 생활했다는 점, 남자 리더의 결핍에서 드보라가 일어 났다는점등등 일견 큰 흐름과는 상관없는 디테일이지만 동시에 큰 그림도 살리는 이런 자세한 설명은 피곤을 잊게 만들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빌립보교회에서의 마지막 반이였기 때문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목사님의 마지막 수업이 인상적이었고 마음을 쏟아 주신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역시 사람은 항상 고민하고 모든 것을 주님이 주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할 때 가능케 되는 내면의 깊이라는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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